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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승할망과 여성의 섬 제주 (출산신화와 여신의 흔적을 따라)

by Universe&Bless 2025. 4. 26.

 

녹차 밭을 뛰어가는 아이


제주는 여성의 섬이라 불린다.
바다를 누비는 해녀, 마을을 지키는 할망당,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여신까지.
그 중심에는 삼승할망이라는 출산의 여신이 존재한다.
삼승할망은 단순한 신이 아니다. 제주 여성 공동체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신이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잇는 생명의 수호자다.
이번 글에서는 삼승할망의 전설과 관련된 실제 장소들을 중심으로 제주가 왜 ‘여신의 섬’이라 불리는지를 되짚어본다.

1. 삼승할망 본풀이 – 출산과 명줄의 신화

삼승할망은 제주 무속에서 출산과 생명, 아이의 명줄을 관장하는 신이다.
그녀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찾아와 그 생명의 운명을 결정하고,출산 중에는 산모를 보호하며, 태어난 아이의 건강을 살핀다.

삼승할망에 대한 대표적인 설화는 ‘삼승할망 본풀이’이다.
이야기에 따르면, 삼승할망은 원래 하늘나라에서 살던 신이었으나 아이를 돌보지 않는 부모들에게 분노하여,
인간 세상에 내려와 아이들의 생사를 결정짓는 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산모 옆에 숨어 있다가 산모가 불결하거나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아이의 명줄을 자르거나 고통을 준다고도 여겨졌다.

이러한 무속신앙은 제주 여인들에게 출산이라는 극한의 순간을 버텨내기 위한 정신적 버팀목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삼승할망은 단순한 여성신을 넘어, 생명의 문을 지키는 절대적 존재로 자리 잡았다.

2. 김녕 삼승할망당 – 여신이 머문 신성한 장소

삼승할망을 모시는 대표적인 장소는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위치한 ‘삼승할망당’이다.
이곳은 작은 해안마을에 자리한 당(堂)으로,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을 기원하는 굿과 제례가 이어져 온 곳이다.

김녕 삼승당은 바닷가 절벽 위에 세워져 있어 신의 기운이 직접 닿는 장소로 여겨졌으며,
산모의 가족이나 심방이 이곳을 찾아 삼승할망에게 제를 올리고 부적을 받아가는 풍습이 전해진다.

당 내부에는 삼승할망의 상징물인 ‘삼지창’, 여성 조각상, 아이를 안은 형상 등이 놓여 있으며,
근래에는 마을 주민들과 무속 연구자들이 힘을 모아 이 당을 문화유산으로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녕 외에도 한림읍의 삼승할망당, 제주 민속촌에 재현된 삼승할망 굿 공간 등이 존재하며,
삼승 신앙은 제주 전역에 분포된 여성중심 신앙의 핵심축이라 할 수 있다.

3. 삼승굿과 여신의 흔적 – 생명과 공동체의 치유 의례

삼승할망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의례는 ‘삼승굿’이다.
이 굿은 아이가 태어난 집에서 열리며, 삼승할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진행된다.

삼승굿에서는 심방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삼승할망의 본풀이 이야기를 굿창으로 노래한다.
굿판에는 아기 용품, 여성의 상징, 생명의 도구들이 놓이며, 굿이 끝나면 부적을 받아 아기방에 붙이거나 몸에 지니는 풍습도 있었다.

이 굿은 단지 제의가 아니라, 한 가족과 공동체가 생명의 기쁨을 나누는 축제의 장이었다.
또한 죽은 아이를 위한 삼승풀이굿도 존재했으며, 이 경우에는 한이 된 영혼을 씻고 삼승할망에게 돌려보내는 해원 의례로 진행되었다.

삼승할망은 이렇듯 출생에서 사망까지, 여성의 삶을 관통하는 신이며, 굿과 제사를 통해 공동체의 감정과 이야기를 엮는 상징적 존재였다.

결론: 여신이 지켜온 여성의 섬, 제주

제주는 단지 아름다운 자연의 섬이 아니다.
이곳은 여신이 다스리고, 여성의 힘이 중심이 된 신화의 섬이다.
삼승할망은 그 상징이며, 지금도 굿과 당, 이야기와 제례 속에서 살아 있다.

오늘 소개한
- 김녕 삼승할망당,
- 한림 삼승당,
- 삼승굿이 이어지는 민속촌 외에도,
설문대할망을 기리는 구좌 설문대할망굴,
생명신화를 기록한 제주신화전시관,
여성 신앙의 흔적이 남아 있는 조천, 애월, 성읍 등도
삼승할망과 연결된 여신 문화의 여정으로 함께 탐방할 수 있다.

삼승할망은 지금도 묻는다.
“그 아이는 살아 있을 준비가 되었느냐.”
제주는 그 물음과 함께 오늘도 여신의 섬으로 숨 쉬고 있다.